뉴스레터

의학은 과학은 같은 분야이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 등 과학은 대개 자연과 우주, 즉 사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주된 대상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학문으로 신학, 법학, 철학, 문학, 예술 등도 있습니다만, 의학은 이들 인문학-예술과도 구별됩니다.

의학은 과학(science)과 예술(art) 두 가지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의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의학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고혈압을 한번 보겠습니다.

혈압 140/90mm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하며, 약물 복용과 생활 습관 개선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치료의 가이드 라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의학이 과학적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고혈압 진단과 치료는 더 고민할 게 없어 보입니다.

고혈압 진단 기준이 있고, 자동혈압계를 이용해 누구나 쉽게 혈압을 측정할 수 있으며 혈압약도 다양하게 출시돼 있고, 생활 습관 개선 방법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습니다. 이를 잘 따르기만 하면 고혈압이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고혈압은 여전히 세계인의 1위 건강 위험 요인입니다.

고혈압의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고 해법까지 나와 있는데, 왜 여전히 인간을 괴롭히고 있을까요?

고혈압 진단을 받으면 부지런히 혈압을 재고, 혈압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담배를 끊고, 소금 섭취를 줄일 것 같지만 현실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과거 고혈압 환자의 1/3이 진단받고, 그중 1/3이 적절한 약을 먹으며, 그중의 1/3이 혈압이 잘 조절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즉 고혈압 환자 8명 중 1명 정도가 제대로 혈압을 조절하고 있을 뿐, 7명은 실패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요즘은 이 수치가 개선되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혈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의 비율은 생각보다 낮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 등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인간의 불완전성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도 자신의 몸에 관련된 문제에는 매우 감성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사실보다 근거 없는 풍문을 따르곤 합니다.

금연, 절주, 운동, 적정 체중 유지, 건강한 식사, 싱겁게 먹기는 고혈압 환자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생활 습관 개선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를 다 실천하는 사람은 미국인의 8%에 불과합니다. 90% 이상이 실천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한국인도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근거도 없는 민간요법, 자연요법 등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료는 과학 지식으로만 완성되지 않으며, 사람인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환자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약을 꾸준히 먹게 하며, 근거 없는 민간요법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는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입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의학지식은 기본이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고, 환자와 인간관계도 잘 맺어야 합니다. 여기에 다년간의 환자 진료 경험까지 쌓아야 합니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약을 처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담배를 끊게 설득하고 운동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싱겁게 먹는 식습관을 갖추게 해야 비로소 의학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고혈압 환자 중에 소금 섭취를 줄이라고 권하면 잘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환자를 설득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금연과 운동을 아무리 강조해도 잘 따르지 않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찾고, 설득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입니다.

진료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유하곤 합니다. 연주자,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매번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료는 겉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의학은 과학이면서 예술입니다.